에곤 실레 (Schiele secession Poster) 에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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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의 알베르티나 박물관 (Albertina Museum)과의 협업을 통해 클림트와 에곤실레의 예술가의 죽음 100 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전시를 기념하여 제작된 가방입니다. 이 가방의 프린트된 그림은 1918년 비엔나에서 열린 분리주의 49회 전시회에 초대되어 실레가 직접 디자인한 포스터가 프린트되어있는 가방입니다. 앞뒤의 같은 디자인이며 두께는 두꺼운 편으로 비침이 없습니다.  


이 전시에는 실레의 작품 50개가 선정되어서 전시되었으며 포스터의 장면은 최후의 만찬을 묘사한 것으로 예수의 자리에 자신의 초상을 넣었고 그의 맞은편에는 그의 스승인 클림트의 자리를 남겨놓은 장면입니다. 전시회는 대 성공이었으며, 그 결과 실레의 그림의 가격은 높아졌고, 많은 초상화 주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18년 가을 유럽에서 2천만 명의 환자를 발생시킨 스페인 독감이 비엔나에 도달하여 그의 나이  28세에 사망하였습니다. 그의 생전의 그가 디자인한 마지막 전시 포스터입니다.  


사이즈: 가로 35.5 cm x 세로 44cm 
끈폭 2.5 cm 끈 길이 57 cm

두께 : 두꺼움(손을 넣었을때 비침이 없고 손가락의 실루엣이 보이지 않는 두꺼운 가방입니다.)

컬러: full color 


에곤실레(Egon Schiele)

에곤 쉴레는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로서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20세기에 모더니스트 비유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간의 성생활을 대담하게 묘사한 것으로 명성을 얻은 그는 오늘날까지 매혹과 논란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친구이자 스승인 구스타프 클림트와는 달리 실레의 그림은 구성적으로 맨몸으로, 과장된 근골격계를 특징으로 하는 인간 형상의 양식화된 표현과, 숫자, 머리, 가슴, 성기 등 사지에 주안점을 둔 특별한 초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890년 6월 12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더 도나우(Der Donau)에서 태어난 쉴레의 사생활은 소란스러웠고 죽음과 비극으로 얼룩졌다. 1905년 아버지가 매독으로 사망한 후 쉴레는 비엔나로 이주하여 유명한 화가인 에드바르트 뭉크와 빈센트 반 고흐와 접촉했다. 1908년까지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그 다음 10년 안에  포르노 혐의로 수감되었고, 미성년자를 유혹한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에서 군 복무를 위해 징집되었고, 두 번 결혼했다. 그는 결국 1918년 10월 31일 28세의 나이로 사망한 스페인 독감 유행병에 굴복했다. 쉴레의 유산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영향력이 있으며, 그의 작품은 뉴욕의 현대미술관이나 비엔나의 외스테리히체 갈레리 벨베데르와 같은 중요한 문화 수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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